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단 편집) === 대외 정책 === 이런 상황에도 제국은 발칸 지역으로의 팽창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주요 국가가 1884~1885년의 [[베를린 회담]] 뒤에 [[아프리카]]로 급속히 팽창했던 반면에 해군력이 뒤떨어졌던[* 사실 해군력 이전에 오스트리아가 손을 뻗을 만한 공백지가 거의 남지 않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가까운 [[발칸 반도]]를 식민지로 삼고자 했다. 이런 발칸 식민화를 오스트리아의 동진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러시아 제국]]의 남진 정책과 충돌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많은 국민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지지했고, 프랑스를 패배시킬 정도로 강력한 [[독일 제국]]이 오스트리아를 지지해줬기 때문에 정복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있는 서쪽과 남쪽으로는 판로를 확장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 정부 입장에서는 동쪽의 발칸 반도로 확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벗어난 발칸 국가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쉽게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또한 1890년대를 전후해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주도해 온 독일계가 독일 민족 국가의 영향으로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에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리 세력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방침도 변경되어서 원래는 제국 소속의 소수 민족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발칸 반도의 현상 유지 정책을 펼쳤지만, 이 시기부터는 제국을 이득으로 다시 하나로 묶기 위해 무력을 과시하고 영토 확장을 계획했다. 이런 팽창 정책으로 발칸 반도를 노리던 다른 주요 국가였던 러시아와 협력하려고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와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하면서 상황이 좋지 않아졌을 때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늘리려고 하였으며, 이후에는 불가리아, 세르비아와 전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연달아 일어난 두 전쟁을 빠르게 승기를 잡아서 큰 손실을 얻지 않았고, 원래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받던 루마니아마저 세르비아와 동맹을 맺은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자 오스트리아의 지배력을 거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러시아와 영토에 대한 영향권을 합의했으나, 러시아가 이러한 조약 변경을 다른 주요 국가들에게 알리고 인정받기 전에 1908년 [[오스만 제국]]이 '통일 진보 위원회([[청년 튀르크당]])'가 일으킨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해 버림으로써 [[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 왕국]]과 [[러시아 제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때 세르비아는 군대를 동원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원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남슬라브 민족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러시아와도 적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라예보 사건]]이 발발했다.] 이 당시 제국을 도와준 국가는 오스만에 영향력을 얻으려는 독일뿐이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동맹은 독일만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